[창세기] 17. 두 번째 꽃뱀 사기와 두 번째 하갈 방생(?)

성격상 나는 ‘불가지론자’에 가까울 것 같으나 적극적으로 신을 거부하는 ‘불신자’를 자처한 이유는, 킬킬거리며 마음껏 구약을 놀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놀라고 불편해해라! 선량한 신자들아!’ 하는 느낌으로 악마성을 뿜뿜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구약을 읽다보니 자꾸 내가 제일 여리고 나약한 날파리처럼 느껴져서 조금 현타 옴.

구약을 보기엔 심약함

아무튼 아브라함이 팔레스타인 지역인 ‘그랄Gerar’에 잠깐 머무른 적이 있는데, 거기서도 사라를 자기 여동생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래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또 사라를 데려감.

대략 이쯤

구약은 시간 순서가 엉망이기 때문에 이 당시 사라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다. 하란을 떠난 65세 이후라는 점만은 확실.

그저 나는 ‘구약인들이 오래 살아서 정정했고, 지금과는 가치관이 달라서 나이 든 모습에서도 미의식을 갖고 있을 수 있겠지‘ 정도로만 이해하고 넘어갔었는데, 아브라함이 한 짓을 뭐라고 변명하나 싶어서 찾아보니 당장 그 얘기보다는 ‘왕씩이나 되어서 쭈그렁 할머니에게 반하다니!‘ 라며 세상 진지하게 분석하고 앉아있음.

난 불신자니까 그렇다쳐도, 이 분들은 왜 이렇게 말씀에 예의가 없지?

권력자가 나이 든 사람을 좋아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불가사의한 일인 거 참 편하겠음 ㅋㅋㅋ 난 최고 권력자가 자기가 직접 만든 창조물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듯 한 게 더 불가사의한데 ㅋㅋ

아무튼 또 아비멜렉 꿈에서 야훼가 나타나 협박하면서, 아비멜렉 집안 여자들을 다 불임으로 만들어버렸다. 누군가가 까맣게 속아서 모르고 한 일이라도, 동기 같은 건 전혀 안 따지고 일단 협박과 상해부터 하는 놀라운 조폭력임.

아무튼 아비멜렉도 억울해하면서 아브라함에게 은 1000조각과 양떼, 염소떼, 소떼, 남녀 종을 주면서 자기 땅 아무 데서나 가서 잘 살라고 한다.

은 조각도 1000개 줄게, 데려가!

어쩌면 나한테 이래? 왜 나를 속였어? 왜 나만 죄인 만들어?‘ 라며 원통해하는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은, ‘사실 하나 더 알려줄까? 사실 사라는 내 이복여동생인 것도 맞아. 나, 엄밀히 말해서 거짓말은 안 했다? (너 혼자 속은 거지.)’ 같은 느낌의 싸이코패스 대사까지 날린다.

와 진짜 ㅋㅋㅋ 억울함을 넘어서서 겁나 허탈하고 기가 막힘 ㅋㅋㅋㅋ 사기쳐서 돈 뜯은 주제에 양심까지 다 챙기고 당한 사람만 아주 등신으로 만드는구나 ㅋㅋㅋ 이런 게 법 잘 알아서 쏙쏙 법망 피해가는 경제사범의 사기인가 ㅋㅋㅋ

깐족깐족

전에 어떤 분이, 에덴 동산의 뱀은 진실 중에 거짓을 섞었기 때문에 진짜 사악한 거라고 했는데, 그 말에 따르면 아브라함이야말로 에덴 동산의 뱀과 같이 사악한 자인가 봄.

이렇게 (목적대로) 돈을 뜯어낸 아브라함은 야훼에게 ‘철수하시죠’ 라고 하고, 야훼는 그제야 불임 치료해 줌.

이렇게 팔레스타인 지역은 아브라함 때부터 대대로 돈 뜯기고 땅 뜯기고 뒤통수를 맞게 되는 것인가…

이제 다시 하갈 얘기로 넘어가 보자.

아브라함이 100살이 되었을 때, 드디어 사라를 통해 아들을 낳는다.

사라는 “신이 우리 부부에게 ‘웃음‘을 주셨다, 사람들은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애를 낳았다고 하면 다 ‘웃겠지?'” 라고 한다.

그에 더하여 작년에 사라가 ‘내가 아들을 낳는다고?’ 하며 몰래 웃었던 것도 포함인지, 여튼 아들 이름은 ‘이삭(웃음, 조롱)’이 된다.

우리 웃음덩이 둥기둥기

이삭이 조금 자라 젖 떼는 날 잔치를 하는데,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광경을 사라가 발견한다.

사라는 “저 종년과 그 자식을 둘 다 내쫗아라. 우리 이삭이 받을 유산을 쟤들에게 나눠줄 수 없다.“고 아브라함에게 요구한다.

맥락을 보면 내쫓는다는 것은 다른 집 하인 같은 걸로 보낸다는 게 아니라, 사막을 헤메다 죽으라는 사형 선고임.

내가 낳은 아들이 생겼으니 경쟁자는 바로 제거해버리려는 사라의 고대인스러운 품성.

아브라함은 속상해했지만 야훼가 ‘괜춘. 내가 돌봄. 걱정 ㄴㄴ‘ 라고 하는 걸 믿고, 진짜로 하갈에게 먹을 것과 가죽 부대에 담은 물을 메어 주고는 이스마엘과 같이 내쫓는다.

문자 그대로 “나가 죽어라.”

아무리 종이라지만 둘째 부인이었고, 아무리 천출(?)이라지만 지 친아들인데;;

이제 하갈과 이스마엘은, 음식이 다 떨어질 때까지 광야를 헤메다가 그 안에 살 길 못찾으면 죽는 거임. 이렇게 하갈 모자는 브엘세바 빈 들을 해메게 된다.

어린 이스마엘은 먼저 지쳐 간다

결국 물도 다 떨어지고, 하갈은 이스마엘을 덤불에 뉘여놓고는 ‘내 자식이 죽는 걸 차마 볼 수가 없구나‘라며 100야드 쯤까지 물러나, 멀리서 바라보며 울음을 터뜨린다.

대체 어떤 부모가 물을 찾으며 죽어가는 어린 자식을 맨 정신으로 지켜볼 수 있겠음? 그렇다고 아예 안 보이는 곳까지 두고 도망치지도 못 하고, 지금부터 자식이 죽어갈 것은 자명한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그 완벽한 무력감 속에 던져진 것임.

ㅠㅠㅠㅠㅠㅠㅠㅠ

‘화살이 나는 정도의 거리’에서 하갈이 딱 못박혀 더 오지도 더 가지도 못한 채 울고만 있다는 이 디테일이 가여운 만큼,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겁나 빡침.

다행히도 마침 천사가 나타나 하갈에게 안 보이던 샘을 발견하게 해줘서 둘은 살아남는다.

“신께서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걱정말고 어서 가서 안고 달래주어라.”

신이 둘을 계속 돌봐줘서 이스마엘은 훌륭한 궁수가 되고, 어머니의 고향인 이집트 출신 여자와 결혼하여 나중엔 12부족의 선조가 된다.

약간 판타지 섞어서 상상해 보는 이스마엘

또한 후에 무슬림들이 이스마엘을 선조로 삼는다. 이 설정을 믿는다면,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은 야훼가 직접 돌봐서 길러낸 무슬림들에게 잘해줘야 할 것 같은데…

추가되는 이야기를 보면, 후에 아비멜렉은 자기 땅에 사는 아브라함과 상호불가침 조약 비슷한 걸 맺고자 한다. (아브라함은 이미 군벌)

그 협상 자리에서 아브라함은 ‘그쪽네 아그들이 우리 우물을 뺏어갔었다, 앞으로 잘 좀 합시다?‘며 무게를 잡고, 아비멜렉은 지금 처음 듣는 얘기라며 쩔쩔맨다.

아브라함은 양떼, 염소떼, 소떼를 주고 조약을 맺은 뒤, 새끼 암양 일곱마리를 또 따로 떼어 주면서, ‘이 우물은 우리가 개발한 나와바리다, 이거 받고 여기선 손 떼라, 알았나?‘ 하며 영역 다툼 건을 마무리 짓는다.

자자 각자 나와바리 정리합시다.

바로 이 협상 자리가 ‘맹세의 우물’이란 뜻의 ‘브엘세바’가 된다고 하는데, 여기가 하갈이 샘을 발견해서 이스마엘을 살렸던 바로 그 지역임.

하갈이 자연 샘을 발견한 게 먼저인지, 아브라함이 먼저 개발한 게 먼저인지, 아니면 브엘세바 지역의 다른 샘과 우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 모르겠고 하갈 화이팅임.

7 Comments

  1. 선생님의 현대적이면서도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유머감각에 여기까지 읽어오면서
    나도 한번 성경을 읽어볼까? 하고 열었다가 다시 닫기를 수번 반복하였습니다.
    정말 글솜씨가 좋으시군요.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Liked by 1명

    1. 사실 개그는 구약이 담당하고 있고 저는 그저 상식만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칭찬의 영광은 구약에게 돌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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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엄청난 TMI지만, 저는 SNS에서 대악마랑 같이 산다는 컨셉을 하고 있어요. (프로필에 보이는 이 녀석)
    대충 누가 ‘대악마 그거 컨셉이죠?’하면 대악마가 “아닌데? 나 대악마 맞는데?”하며 노는 걸 몇 년 동안 하고 있어요.
    근데 이렇게 성경 해석하는걸 보다보니까, 차라리 악마학 같은걸 연구해서 악마 믿는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생각해봐요, 신이랑 선조가 삽질하는 이야기를 보고 있는 것보단 마음 한 켠에 악마를 넣어두는게 더 현실적이고 기분이 좋잖아요.
    아무튼 대악마는 “그냥 아무 것도 없이 그냥 악마를 믿으면 그만이다. 거추장스러운 기도 같은거 하지 말고 평범하게 법 지키고 살아라.” 라고 말하니까 계속 대악마 데리고 살려고요.
    선생님 덕분에 용기를 얻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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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아, 전 야훼의 심정 이해합니다… 저도 막 그린 그림은 사랑스럽지만, 그린지 이틀 된 그림은 지우고 싶어 미쳐요.
    여기 왜 평이 안 맞아?! 이러고…

    Liked by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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