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 이름 그대로 형의 발꿈치를 잡는 야곱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은 뒤, ‘그두라’라는 여자와 결혼하여 폭발적으로 6명의 자식을 더 본다. 사라가 엄처였긴 한가 봄.

  1. 사라 – 이삭 (차남)
  2. 하갈 – 이스마엘 (장남)
  3. 그두라 – 시므란, 욕산, 므단, 미디안, 이스박, 수아

그리고는 175세에 죽어서, 사라를 안장했던 헤브론의 막벨라 굴에 자신도 안장된다.

그런데 이때, 놀랍게도 이삭과 이스마엘이 함께 아브라함을 안장했다고 나옴.

아브라함을 안장한다.

이스마엘이 평소 교류하며 살았을 것 같진 않고, 뒤늦게 찾아온 것 같다.

왜 그렇게 추측하냐면, 이스마엘은 ‘모든 형제들과 맞은 편에 거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단순히 지리적 위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 ‘맞서서 홀로 떨어져’, 즉 반대자의 입장에 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얼굴 비추지 않다가 일가를 이루고 꽤 세력이 생긴 후에 나타났을 것 같다. 혹시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제야 모습을 드러낸 게 아닐까?

아브라함이 죽은 뒤, 장례 준비에 바쁜 와중에 홀로 터벅터벅 들어오는 궁수 차림의 낯선 이방인을 떠올려 보라. 그에게선 사막의 모래 냄새가 풍긴다. 한 평생 전사로 살아온 자 특유의 거친 풍모를 지니고 있다.

그는 아브라함의 시체 앞에 무릎을 꿇고 애도를 표한다. 이삭이 ‘누구시냐, 평소 고인과 친분이 있으셨냐‘고 물어보는데 그의 눈빛이 낯익다.

“친분? 그렇군. 있다고 해야 할까, 없다고 해야 할까.”

“…형?”

…오덕 클리셰 죄송.

이스마엘은 느바욧, 게달, 앗브엘, 밉삼, 미스마, 두마, 맛사, 하닷, 데마, 여두르, 나비스, 게드마를 낳고 자신은 137세까지 살다 죽었다.

이 이스마엘의 열 두 아들은 마을과 부락의 이름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 사람들이 세운 열두 지파의 통치자들의 이름이기도 하다.

한편 40에 리브가와 결혼한 이삭은 60에 쌍둥이인 에서야곱을 낳는다.

형은 날 때부터 피부도 붉고 털북숭이라, 거칠다는 의미의 ‘에서(히브리어로는 에사브)’가 된다.

야곱은 나올 때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와서, 이름도 ‘발꿈치를 잡다, 속여 넘기다, 발꿈치를 잡아 넘어뜨리다‘ 등의 의미를 가진 ‘야곱’이 된다. 그는 자기 이름대로 인생 전반에 걸쳐 형의 발목을 잡는다.

저 저 저 형 발목잡고 나오는 것 좀 보소

야생 짐승 요리를 즐기는 아버지 이삭은 노련한 사냥꾼인 에서를 더 예뻐하지만, 어머니 리브가는 얌전하게 집안에 있는 야곱을 더 예뻐한다.

뭔가 자기 기질이랑 반대인 자식을 좋아하게 된 듯. 내성적인 이삭은 호방한 에서를, 약간 타이거맘 같은 리브가는 얌전한 야곱을 더 이뻐한 듯.

근데 이 야곱이 얌전한 도련님처럼 보이지만, 곰 같은 멍충이 형이 배고파 죽겠다며 보챌 때 렌틸콩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사는 의외의 야심가였음.

항상 조용하게 웃고만 있던 동생이 어느 날 감고 있던 실눈을 뜨고 ‘저런 저런 시장하시군요, 형님. 그럼 이 죽을 드려야지요.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장자권부터 넘겨주실까요?‘ 뭐 이런 대사 씨부릴 것 같은 느낌임.

콩죽 한 그릇과 장자권 트레이드

한 편, 이삭 얘기를 잠깐 해보자. 중간에 난데없이 끊는 이유는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구약 순서가 이 모양이라서임.

이삭도 아브라함처럼 그랄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자기 아내 리브가를 ‘여동생’이라고 말하고 다녔다가 집에서 리브가를 애무하는(…) 모습을 블레셋의 왕 아비멜렉에게 들킨다.

창문 좀 닫으라고 멍청아!

벌써 같은 수법 세 번째라고!

자기 백성들이 무심코 리브가와 결혼하려다 자기도 모를 죄를 지을까 두려워한 아비멜렉이 ‘이 부부를 건드리면 사형‘이라고 공표해 준 덕에, 이삭도 블레셋에서 거침없이 농사 짓고 살면서 재산도 잘 불리고 부자가 된다.

뭔가 이 꽃뱀 수법, 자기 아버지한테 배운 듯 하다.

아무튼 부자가 되니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해서, 예전에 아브라함이 파놨던 우물도 메워버리는 등 분탕을 친다. 그래서 이삭은 자꾸 옮겨가며 새로 우물을 파는데, 그때마다 블레셋인들이 쫓아와 시비를 튼다. 그럼 이삭은 그냥 내주고 옮겨 버림.

어휴 우물 좀 파고 정착하기 힘드네

우물 관련 얘기는 재미없어서 한 방에 요약하겠다. 이삭은 에섹 우물, 싯나 우물, 르호봇 우물, 세바 우물을 판 뒤, 세바 우물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아비멜렉과 상호불가침조약을 맺는다.

또 시간은 흘러 흘러 이삭이 눈이 멀 정도로 늙는다. 삼국지 읽는 느낌임. 내 맘 속의 캐릭터들은 아직 어린 소년인데 바로 다음 장에 어느 새 장성한 아들 몇 명씩 데리고 나옴.

이삭이 얼마나 조용히 살았는지, 뭔가 큰 사건이라곤 우물 얘기 정도 밖에 없고 갑자기 늙고 눈 먼 상태로 건너 뛰었다.

이삭은 축복을 내려주려고(아마 유산 분배도 포함?) 큰 아들 에서더러 야생 짐승을 사냥해서 요리를 해오라고 하는데, 에서가 사냥 나간 사이에 리브가가 우리에 있던 염소로 요리해서 야곱을 대신 들여보낸다.

야곱에게 형의 옷을 입히고, 매끈한 팔과 목에 염소 가죽을 둘러줌. 그걸 쓰다듬어 보고 이삭은 깜빡 속아 야곱에게 장자가 받았어야 할 축복을 내려준다.

더듬더듬, 옳지, 에서가 맞구나.

그나저나 에서는 얼마나 털이 많았길래 염소 가죽하고 피부 느낌이 비슷했던 거임?

가만 보면 리브가는 뒤에서 이삭을 많이 조종해본 티가 난다. 조종한 걸 들키더라도 이삭이 자신을 심하게 탓하지 않으리란 것도 아는 자신감이 보인다. 게다가 음흉한 야곱은 또 리브가가 하라는 대로 아버지를 감쪽같이 속여넘김.

모든 사태가 다 끝나고, 뒤늦게 아내와 차남에게 속은 걸 눈치 챈 이삭은, 속상해서 엉엉 우는 에서한테, 야곱이 축복을 다 가로챘다며, 더 이상 나눠 줄 축복이 없다며 안타까워 한다 ㅋㅋㅋ

축복 내용이란 게 고작해야 ‘야곱이 형제와 친척들을 다스릴 것이고, 곡식과 포도주가 안 떨어질 것‘ 정도인데, 이제 남은 게 없다고?

축복에 총량이 있었던 거였어?

어머니, 뭐하시는..?

야곱 라인인 이스라엘 후손들이 이 모든 경전을 편집 정리할 때, 절대 권력 장남을 제낀 걸 정당화하기 위해 꼼수로 설정을 짜넣은 것으로만 느껴지는 건, 내가 너무 비뚤어져서일까?

머리 좀 굴려서 ‘건강하고 장수할 것‘이라거나 ‘양과 염소가 넘칠 것‘이라거나, 뭐 좀 다른 걸 끌어내서 아무 말이나 해주면 되겠구만, 심지어 그런 것조차도 도저히 생각이 안 나면 그냥 고멘고멘하고 끝내면 되겠구만,

굳이 안 해도 될 저주까지 하는 건,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함?

네가 살 곳은 땅이 기름지지 않고, 하늘에서 이슬도 내리지 않는 곳이다. 너는 칼을 의지하고 살 것이며, 너의 아우를 섬길 것이다. 그러나 애써 힘을 기르면, 너는 네 목에 씌운 멍에 정도는 부술 수는 있겠지.”

이렇게 에서(다른 말로 에돔 땅)는 아버지 때문에 또 내내 고생을 하고…

노아도 함한테 그 따위로 하더니만, 이 집안은 아버지가 아들 편애하는 걸 넘어서서 다른 아들의 신세를 적극적으로 개망치는 데 장사인 집안이다.

계속 가나안 지역을 웬수처럼 털어대는 이유를 노아나 이삭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것으로밖에 안 보임.

아무튼 동생에게 축복을 빼앗긴 에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동생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 말을 들은 리브가는 야곱을 도망치게 한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가면, ‘라반’이라고 내 친오빠가 있는데, 너한테는 외삼촌이란다. 그분에게 의탁하렴.’

이제 이스라엘의 시조, 야곱의 모험이 시작된다. 미리 주제를 예고하자면, ‘노동하기 전엔 계약서를 잘 쓰자.’ 이다.

댓글 3개

  1. “축복에 총량이 있었던 거였어?”

    야, 이거… 제가 어렸을 때 읽으면서 뭔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지는 못했던 그 의문…

    이게 참… 결국 상식적인 해석의 문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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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채플수업때 들은건데 장자축복이란게 단지 말로만 이뤄지는게 아니라 사실상 차기 족장을 정하는 의식이라고 하네요
    그니까 동생이 형을 재끼고 왕이 되려 했다는것…
    왕이 될 후계자를 지목하고 의식까지 치렀는데 나중가서 그걸 무르기도 난감한게 이삭의 입장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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