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crifice of Isaac 그림들을 모아봄

1. 이삭의 얼굴을 보여주는 유형

이삭의 표정이 대체로 순종적이다. ‘슬프지만 주님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겠습니다’ 같은 연출에 항상 볼 수 있는 공식화된 표정이다. 항상 하늘을 바라보거나 땅을 내려다보면서, 죽이시거나 마시거나 체념한 듯한 느낌.

인간의 감정을 거세시키고 성스러움을 피상적으로 연출한 이런 스타일의 바이블 아트는, 아주 잘 그렸더라도 난 조금 지루하게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이나 천사들의 표정도 연기 못하는 배우가 그냥 옛날 스타일로 기계적으로 연기하는 것 같음.

특히 아래의 두 그림은 아주 전형적인 연출. 르네상스 특유의 원근이 강조된 장소 선정이나, 전형적인 표정들.

체념을 지나쳐 종교에 취한 듯한 이삭의 표정이 너무 전형이다.
수동적이고 복종적임을 강조하기 위해 이삭을 ‘르네상스 그림 속 여인’처럼 연출해놨다.
이것 역시 ‘르네상스 그림 속 여자’처럼 연출한.

그래도 아래 이 그림은 이삭의 표정이 덤덤하긴 해도 조금 더 인간같긴 하다. 과장된 복종이나 체념이 아닌, 그냥 인간적인 씁쓸한 체념 같음. 어쩌다 성화 속에 들어가 있는, 혼자 종교 뽕이 깨고 현타 온 인간 같다. 여전히 아브라함이나 천사는 지루하게 연출되어 있다.

난 아버지 당신이 언젠가 나에게 이럴 줄 알았어.

아래 그림의 이삭의 표정은 흔히 보던 지루한 느낌이지만, 아브라함의 표정에서 놀라움과 울컥함이 느껴져서 마음에 든다. 천사가 늦을세라 다급하게 팔을 꽉 움켜잡은 자세도 좋다.

정말 안 죽여도 됩니까?!

2. 이삭의 눈을 가리거나 잘 보이지 않게 처리한 유형

아브라함이나 천사의 표정이나 동작 연출은 여전히 지루하기도 하지만, 이삭의 표정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대상화된 나약함이 강조되어 좀 더 비참한 느낌이 든다.

아버지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Beltrano, Agostino; Sacrifice of Isaac; Tower Hamlets Local History Library and Archives; http://www.artuk.org/artworks/sacrifice-of-isaac-133385
희생자의 자세를 이렇게까지 극적으로 묘사하는 건, 지나치게 희생을 낭만화시킨다는 느낌. 멋있긴 하지만…

아래의 그림은 천사의 동작이 가장 좋다. 역동적이고 앵글도 특이하다. 보통 천사의 얼굴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그렸을 텐데, 등 돌린 모습으로 그려진 게 맘에 든다.

그림 안으로 뛰어든 듯한 천사의 앵글은, 마치 관객이 뛰어들어 칼을 막는 듯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아래 그림은 이삭의 얼굴을 가린 그림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이다. 얼굴을 저렇게 손으로 꽉 누르는 느낌이 아주 억압적이고 한편으로 무기력하면서 극적이라 좋다.

아이구 이 화상아, 하란다고 그걸 진짜 하냐! (등짝 팡팡)

아래는 이삭의 얼굴을 가린 그림 중에서도 특이한 구도라서 특히 좋아하는 그림이다. 이삭은 물론, 아브라함과 천사의 얼굴 모두 보이지 않게 그렸다.

어쩌면 차마 짐작할 수 없는 표정들을 상상해서 그리느니 이렇게 연출하는 것도 좋은 듯.

3. 중세 그림들은 그냥 다 재밌음 ㅋㅋㅋ

잘 그린 중세그림도 많지만, 나는 못그린 중세 그림이 너무 좋다. ㅋㅋ 이 용감함 어디서 나오는 거지 ㅋㅋ

이삭을 한참 찾음

4. 부조

5. 펜화

거친 펜선이 이 상황의 드라마틱함을 잘 드러내는 것 같아서 좋아함.

6.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원픽

내가 가장 좋아하던 원픽은 아래였다. 위대한 스킬맨 카라바지오의 그림.

순종이나 체념, 성스러움은 개뿔, 죽음 앞 공포에 질린 이삭의 표정이 정말 훌륭하다. 1603년의 그림.
1598년도에 카라바지오는 같은 주제로 한 번 이렇게 그렸었다. 엄청 잘 그렸는데, 엄청 공식적인 연출.

그런데 가장 좋아하는 원픽이 바뀌었다. 상황이 종료된 후의 아브라함과 이삭이다. Jan Lievens가 1638에 그린 그림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서로 끌어안는 이 장면!
글썽거리면서 안도와 기쁨이 살아있는 표정도 좋고, 둘의 눈동자가 똑같이 한 곳을 향하는 것도 좋다. 특히 천사를 직접적으로 그리지 않고, 이렇게 무언가 있음을 눈동자의 방향을 일치시켜서 표현한 것이 아주 세련되었다.
둘 다 서로를 끌어 안고 있는 모습도 멋짐.

인간의 감정이라곤 없는 것 같은, 기계적인 캐릭터 해석, 기계적인 교훈, 기계적인 연출의 바이블 아트만 잔뜩 보다, 이런 걸 보면 다른 관점을 가진 예술가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상황 종료된 이후를 그린 그림이 또 있긴 하다. 놀랍게도 위 그림을 그린 Jan Lievens가 21년 후, 1659년에 같은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Jan Lievens 의 1659년 그림. 스킬은 더 좋아졌을지 몰라도, 난 예전의 거친 그림이 더 마음에 든다.

대체 20년 동안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거야.

댓글 7개

  1. 그림 특집 이렇게 정리해서 보여주니 너무 재미있게봤어요 ㅋㅋㅋㅋ
    저는 그 관객이 뛰어드는 듯한 그림이 원픽이라고 생각하고 봤는데 마지막의 불신자님의 원픽을 보고 윈픽 체인지 했습니다,, 모아놓으신 그림들중에 가장 인간적으로 느껴져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디테일이나 이삭얼굴에 입술 멍자국같은거랑 생체기가 앞에 무슨일이있었는지 상상하게 되고, 다른 그림들은 순교자, 성스러움 이런 느낌이 강한데 원픽 그림은 그냥 겁에 질린 아이같아서 더 안쓰럽네요 ㅠ
    덕분에 재미있게 성경보고있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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