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 영웅신화들의 흔한 반복 패턴 중 하나인 모세의 탄생

이집트 고센 땅에 정착한 야곱네는 어마어마하게 잘 나가는 총리 아들 둔 빽 좋은 집안이었음. 그런데 이들의 자손들이 왜 나중에는 노예 신세가 되는지 궁금했다.

출애굽기 첫 장 열자 ‘자손들을 너무 많이 낳아대서 이집트가 이스라엘 사람으로 꽉 참(…)‘이라고 나옴.

쟤들이 우리보다 수도 많고 센데? 저놈들이 적과 합세해서 우릴 치고 빠지면 어쩌지?‘ 라는 걱정이 든 파라오는 곡식을 저장하는 성읍인 비로라암셋을 건설하는 공사에 이스라엘인들을 강제 동원함.

피라미드는 지원자 중에서 선발하여 보수 꼬박꼬박 지급하며 지었다는데 타민족은 그냥 굴린 모양임

가혹한 공사 감독관 밑에서도 ㅍㅍㅅㅅ로 꿋꿋이 자손을 불리는 이스라엘인들… 이에 이집트인들은 극혐하여 회반죽, 벽돌 제작, 밭일 등등으로 더욱 개혹독하게 부린다.

나아가 파라오는 히브리인 산파인 십브라부아더러, 히브리인 산모가 낳는 아들은 족족 죽이라고 명하지만, ‘어휴 히브리 여자들은 이집트 여자랑 다르게 어찌나 튼튼한지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쑥쑥 낳더라고요‘ 라는 핑계를 대고 아들들을 살려준다.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은 계속 불어남.

이집트 여자들은 약하다는 식의 대사를 보니, 어쩌면 사실은 이집트인의 여권이 더 높아서 출산율이 낮았던 게 아닌가 싶음. 뭔가 출산율 떨어지면 동서고금을 통틀어 하는 말이 ‘요즘 여자들 나약해서‘이잖음ㅋㅋㅋ

아무튼 야훼는 두 산파에게 보상한다.

야훼 : 십브라와 부아네 가문 번성해^^

(근데 아버지네 가문임, 남편의 가문임? 이런 세계관에서 여자의 가문이 번성한다는 건 어떤 갈래를 말하는 거임?)

결국 인구 제한에 실패한 파라오는 모든 백성들에게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아이는 다 강물에 던지라.”고 잔혹한 명령을 내리기에 이른다.

산파 둘이 말을 안 들으니 직접 던진다

그러나 잘 생긴(?) 덕에 버려지지 않고 석달이나 몰래 키워지던 레위 집안 출신의 남자 아이가 하나 있었다.

여러 판본이 공통적으로 ‘잘 생겼다‘고 번역하고 있는데, 영어로는 ‘goodly(KJV)’ 또는 ‘special (NLT)’이고, 히브리어로는 토브טוֹב다.

토브는 넓은 의미라서, 좋은, 선한 등등으로 두루 쓰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해피 뉴이어, 좋은 새해!‘ 같은 말로 쓸 수 있는 ‘샤나 토바!‘ 같은 걸 보면 대략 쓰임이 짐작되실 듯.

잘 생겼다는 게 외모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뭔가 ‘잘 났다‘는 의미라고 생각하면, 옛날 말투긴 하지만 나름 번역이 신박하긴 함ㅋㅋ

이렇게 석 달은 어찌어찌 숨겨 길렀지만 더 이상은 한계라, 엄마는 역청과 송진을 발라 물 안 새게 만든 파피루스 갈대 바구니에 아기를 넣어 나일강 갈대밭 사이에 드랍쉽 한다.

이를 목욕하러 나온 이집트 공주가 발견하고 몸종들에게 건져오라고 한다. ‘에그 히브리인 아기인가 봐‘ 하며 가여워하던 차,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아기의 누나가 튀어나가 ‘제가 히브리인 유모를 구해올까요?‘ 하고는 모른 척 친모를 소개한다ㅋㅋㅋ

프레데릭 구달frederick goodall, [모세의 발견]. 정말 잘 그렸긴 했는데, 피부색을 저렇게 구분해 놓은 게 현대인의 눈에는 좀 투명해 보여서 같잖음

그 덕분에 친모는 아들을 살릴 수 있었던 건 물론, 집에 도로 데려가 유모 삯까지 받으며 기를 수 있었음.

이 누나의 재치가 결국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살려낸 셈인데 산파들처럼 뭔가 보상을 해줘야 하지 않음? 입을 싹 닫네?

아무튼 시간이 지나 아들이 젖도 떼고 좀 자라니 친모는 공주에게 자기 아들을 입양보낸다. 공주는 아이의 이름을 ‘끌어내다, 건지다‘라는 의미의 모세מֹשֶׁה로 짓고 양자로 삼는다.

여기서 잠깐 다른 이야기들을 좀 해보겠다.

기원 전 2350년 경, 족이 수메르의 도시 국가들을 정복하고 메소포타미아 최초의 통일 제국 아카드를 탄생시킨다. 성경에는 악갓으로 나옴.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바로 이 아카드가 멸망한 후에 태어난 사람임.

아카드 제국의 초대 왕 사르곤에 대해서도 탄생 신화가 전해지는데,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나는 아카드의 위대한 왕 사르곤이다. 신녀인 어머니는 비밀 장소에서 나를 낳고는 갈대로 엮은 바구니 안에 나를 넣고 송진을 묻힌 뚜껑으로 덮어 (유프라테스) 강물로 흘려보냈으나 나는 익사하지 않았다. 물 긷는 사람인 아키가 나를 주워 아들로 삼았다. 아키는 나를 정원사로 만들었는데, 나는 이슈타르 여신의 총애를 받고 마침내 왕이 되어 45년간 재위하였다.”

사르곤 신화가 강물에 드랍되는 신화로서는 최초일 거임

또 한 편, 고대 힌두 서사시인 마하바라타에 등장하는 영웅 카르나의 탄생 신화는 다음과 같다.

쿤티라는 이름의 프리타의 한 공주는 결혼 전에 태양신 수르야의 아들을 낳았다. 쿤티 공주는 아이의 출생을 숨기기 위해 강에 유기한다.

“그리고 유모와 나는 갈대로 커다란 바구니를 만들고 가장자리를 밀랍으로 칠했다. 바구니 안에 아이를 눕히고 아크바 강에 흘려보냈다. 바구니는 캄파 시까지 흘러갔다. 마침 전차몰이꾼과 그의 부인 라다가 이를 발견했다. 아이가 없어 상심하고 있던 라다아지라에게 바구니를 끌어오게 시켜, 아이를 아들로 삼았다.”

미혼모 학대는 인류의 보편 취미인 듯

참고로 쿤티는 나중에 판두 왕과 결혼하는데, 판두 왕과 정을 통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의 계시를 얻어 세 아들을 낳는다. 그 중 하나는 동굴에서 잉태함 ㅋㅋ (초면인데 실례지만 어디서 많이 뵌 분 같네요)

또또 한 편. 라이오스 왕과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는데, 아버지를 살해할 운명이라는 신탁이 있었기에 라이오스 왕은 아들을 키타이론 강에 유기함. 다들 아는 오이디푸스 신화임.

이것의 다른 버전은 아이 처리를 명령받은 심부름꾼이 코린토스의 목동에게 넘긴다는 것임.

이것의 또 다른 버전은 바다에 떠 있는 상자 안에 아이가 들어 있었고, 폴리보스 왕의 아내인 페리보아가 발견한다는 것임.

또또또 한 편. 페르시아의 베멘 왕은 자신의 후계자로 딸이자 아내인 후마이를 지목한다. 베멘 왕이 죽고, 후마이가 또 다른 아들을 낳는데 이를 상자에 넣어 유프라테스 강에 버림. 이를 무두장이가 발견하여 양자로 삼는다. 그는 무두장이가 되기 싫어하여 전사가 되었다고 함.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는 그의 딸 다나에가 낳은 아들의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이란 신탁을 받고 다나에를 가두고 감시한다. 그러나 제우스가 황금 비로 변신하여 지붕으로 새어 들어가 다나에를 임신시킴(…) 그렇게 페르세우스가 태어났지만, 왕은 아이의 아버지가 제우스란 말을 못 믿고 딸과 페르세우스를 상자에 넣어 바다에 던짐.

다나에가 황금 비로 수태되는 그림은 동서고금 화가들이 풀악셀밟고 달려든 주제라, 그 수도 많은 데다 하나같이 더러움. 그게 어떤 느낌인지 샘플 몇 개만 보여드림
그나마 못 그린 덕에 덜 더러워보이는 고대 그리스 시절 그림임
르네상스 때 그림들도 더럽지만 클림트의 다나에도 못지 않음. 클림트 이 양반도 신화 소재를 개찐득하게 그리는 것에 일가견이 있음. 유디트 같은 거 보셈.

선왕의 딸 일리아는 전쟁의 신 마르스와 정을 통하여 쌍둥이를 낳는다. 알바의 현왕 아물리우스는 아이들을 티베르 강에 버리게 한다. 하인들이 아이들이 담긴 바구니를 강에 밀어넣지만, 한 어미늑대가 이 아이들을 지키며 젖을 물리고 돌본 덕에 살아남는다. 아이들은 나중에 한 우두머리 목동 부부가 데려다가 키운다. 이 아이들은 로물루스레무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후에 로마를 창건한다.

긴 타임라인을 한 장에 압축

탈룽가의 왕인 지크문트는 왕비에 대한 모함-천민의 아이를 임신했다-을 곧이곧대로 믿고는, 신하를 시켜 임신한 아내를 숲에 데려가 혀를 자르고 증거를 가져오라고 한다. 하트빈 백작은 시키는 대로 하자고 하고, 헤르만 백작은 개의 혀를 대신 잘라가자며 격론을 벌인다. 그 사이 왕비는 사내아이를 출산했고, 아이를 천에 싸서 유리로 된 배 안에 누인다. 마침내 격론에서 이긴 하트빈 백작은 유리 배를 발로 걷어차 강물에 빠뜨려 버린다. 왕비는 기절하고 결국 죽음(…) 나중에 아이는 대장장이의 양자가 되어 지크프리드라고 불리게 된다.

오스트라시아의 영웅 볼프디트리히는 강에 유기되어 죽을 뻔 했다가 사냥터지기의 양자로 자란다.

오구대왕은 자꾸 공주만 낳는 것에 빡쳐서 마지막으로 태어난 7번째 공주를 옥함에 넣어 강물에 띄워버리라고 한다. 이렇게 버려진 바리데기는 노부부에게 건져져 양녀가 된다. 어찌어찌 저승까지 가는 개고생 끝에 죽음을 주관하는 여신이 되고 무당의 기원이 된다.

바리데기

강에서 빨래하던 할머니는 강물에 떠내려오는 복숭아를 건져 갈라보니 아이가 들어 있어서, ‘모모타로‘라고 이름을 짓고 길렀다. 모모타로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오니를 물리친다.

이런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출생이 신비로우신 분께서 평범하게 자라지만 결국은 정당한 지위를 복권하거나 영웅이 된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 소재가 그렇게 핫한 이유도 결국 인류가 유구하게 좋아하던 이야기의 변주이기 때문임.

어릴 때 유기되는 영웅들이 워낙 많아서, 산이나 동굴은 빼고 ‘강이나 바다‘를 매개로 하는 것만 골랐는데도 이 정도임. 이보다도 훨씬 더 많을 텐데, 적당히 책 찾아보고 내가 아는 걸 추가한 이 정도 수준에서 적당히 마무리 짓고자 한다.

남의 신화를 서로가 벤치마킹했든, 인류의 정신이 결국 거기서 거기라 모든 신화에서 비슷한 구조가 나타난 것이든 이유는 다양하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놀랍도록 평범하거나 아주 독창적인 탄생 일화가 있다면 모를까, 다른 신화들과 비슷하게 변주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빼박 창작물이라는 것임.

그리고 디테일까지 지나치게 닮은 사르곤과 모세의 경우는, 지역도 겹치고 하니 그냥 모세가 사르곤을 80%는 베낀 거라고 봐도 될 듯 하다. 즉 모세 탄생썰은 고대 인류의 고만고만한 정신력과 창작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믿을 게 1도 못 된다는 점.

그리고 성경 읽고 그림 찾으며 느낀 건데, 2000년 간 인류는 성경을 인종차별, 성차별, 약자 억압, 자민족중심주의 등 자구 해석들의 근거로 삼고, 덤으로 신나게 정욕발싸 자위질 및 피해자 고통 감상 등등의 배덕한 엔터테인먼트로도 활용했다는 점도 확실한 것 같음. 그야말로 만악의 근원이 아닌가.

참고 : 오토 랑크, 이유진 옮김, [영웅의 탄생], 루비 박스

댓글 6개

  1. 출애굽기 첫 편부터 불온서적의 기운 그대로네요… (절레절레)
    그나저나 세계 각지에서 ‘강에 떠내려온 아이가 나중에 알고보니 영웅이 된 썰 푼다’ 신화가 이렇게 많은지 오늘 배우고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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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니 하얗게 할거믄 모세만 하얗게 하던가 같은 민족인데 공주는 희고 시녀들은 까무잡잡햐… 새끼들 진짜 뇌청순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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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디서 들었는데, 이집트 벽화에서 어린애는 흰색으로 표현했다던가, 신분에 따라 색을 다르게 표현했다던가 하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색을 상징적으로 썼더는 뜻이라고 합니다. (제가 직접 공신력 있는 레퍼런스를 본 게 아니라서 확언할 수가 없지만) 또한 이집트는 실제로 다인종 국가였다고 보이니 피부색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도 나름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그럼에도 공주랑 모세가 하얀 건 너무 투명하지 않습니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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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일요일에 올리실 줄 알았는데 일찍 오셨네요!!!! 생각지도 못한 선물 받은 기분입니다.
    신화에서 바구니에 실려간 영웅 변주가 저렇게 많았는지 몰랐네요. 식수원인 강을 타고 오는 무언가를 인류는 유구하게 좋아했나봅니다.
    히브리인들 대우가 나빠진건 요셉 사후 고리대금업으로 재산을 넘긴 사람들의 원한때문이 아닐까 궁예해봅니다. 산 요셉이 무서워서 참았지만 요셉도 요셉 빽도 죽은지 한참 되었을테니까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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