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 의처증도 권리인 이스라엘 남편들

민수기가 워낙 빵빵 터지는 것이 많긴 하지만, 나더러 가장 아스트랄한 물건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내 부정 판별법’을 주저없이 선택할 것이다.

이번 편은 민수기 5장을 할 텐데, 여기에는 피부병 환자 및 밀접접촉자를 캠프 밖으로 내쫓으라는 잔소리와,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 원가에다가 20%를 더 더한 비용으로 배상하라는 것, 배상할 사람이 없는 잘못을 하면 속죄용 숫양에 배상금까지 더해서 제사장에게 바치라는 규율까지 포함되어 있다.

레위기 할 때 다 했던 소린데 뜬금없이 또 집어 넣고 있음.

피부병 걸린 사람들, 한센병자들 캠프 밖으로 나가세요!

아무튼 하고 또 했던 잔소리들 걷어내고 나면 ‘아내 부정 판별법’이 나온다. 11절~31절까지다. 대체 무슨 쉰소리를 하려고 그러는지 한 번 각잡고 들어보자.

일단 이스라엘의 모든 남편은 아내를 의심하고 신의 판결에 회부할 권리가 있다. (짐작했겠지만 아내에겐 없다.)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 게 분명한데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상황, 또는 괜히 질투가 나서 아내를 의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의식이 가능하다. 사실 심증이 있다는 말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고, 그냥 ‘남편이 질투심 때문에 의심이 되면(실제로 한 말) 아내를 제사장에게 끌고 갈 수 있다‘는 내용으로 심플하게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야훼도 신씩이나 되어서 이런 거나 판별해 줘야 하고 참 할 짓도 없다.

약간 이런 저렴한 느낌

일단 갔으면 남편은 아내 몫으로 보릿가루 1/10 에바를 제물로 바친다. 싸다. 이 가루에는 향이나 기름을 얹지는 않는다. 그런 거 얹는 건 화목제 같은 데서나 기쁠 때 하는 거임.

그럼 제사장은 여자를 앞으로 나오게 해서 죄인마냥 머리채를 풀게 한 뒤, 야훼에게 판결을 맡길 준비를 한다. 여기서부터가 꿀잼임.

일단 옹기에다가 거룩한 물을 떠온 뒤, 성막 바닥의 흙을 긁어서 물에 탄다.

ㅋㅋㅋ 벌써부터 심상찮음.

흙 탄 물을 든 제사장이, 보릿가루를 든 여자의 머리채를 풀게 하고 있음. 그 와중에 뒤에서 혼자 상처받은 척 하는 남편의 표정이 킹받는다.

뭔가 제사장 일을 잘 몰라도 80년대 신입생 환영회 OT에서 축하주 맨드는 복학생 데려다 놓으면 대충 할 수 있을 듯. 이제 이것은 더 이상 거룩한 물이 아니다. 쓴 물이 된다. 그래서 민수기의 이 내용을 ‘쓴 물의 시련‘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는 보릿가루를 들고 서 있는 여자더러 다음과 같은 맹세를 시킨다.

‘혹시나 불륜을 저지른 게 사실이라면 저주를 받아도 좋다고 맹세해라. 허벅지가 마르고 배가 부어오르는 저주를 받게 될 것임. 하지만 결백할 경우엔 저주에 면역임.’

여자는 오케, 오케(아멘, 아멘) 해야 함.

그러면 제사장은 방금 한 ‘허벅지가 마르고 배가 부어오를 것’이라는 내용의 저주를 두루마리 같은 데다 글로 써서, 이걸 흙탕물에다 빤다. 물에다 저주글을 녹여서 저주를 포함시킬 생각이었나 봄. 고대인의 이 놀라운 직관성.

고전 RPG 게임에서 ‘저주가 적힌 양피지를 물에 씻어서 저주 포션을 만드시오‘ 같은 수준임. 하긴 뭐 고대인은 글자에 마법적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경우가 많았으니 납득해 줄 수 있는 논리성이다.

그리고는 제사장은 여자가 들고 있던 보릿가루를 받아들고 단 앞에 가서, 한 움큼만 집어서 제단에서 불사른다.

그리고 나면 여자가 그 저주템을 원샷한다. 만약 불륜이 사실이라면 여자는 쓰라린 고통과 함께 배가 부어 오르고, 허벅지가 마르게 된다. 그러나 결백하다면 아무런 해도 없고, 임신에도 지장이 없음.

한국의 체대 신입생 같은 기개로 원샷하고 있다.

근데 창세기 때, 아브라함과 야곱이 각각 자기 허벅지 사이에 손을 넣고 맹세를 시켰다는 구절이 실은 야레크(꺼츠)를 쥐게 했다는 뜻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럼 허벅지가 마르라는 이 저주는 설마…

그래서 히브리어 성경도 찾아본다. 역시나 야레크다.

יְרֵכֵךְ֙ נֹפֶ֔לֶת 예레케크 노펠레트

‘야레크가 떨어지다, 죽다, 중단되다’ 등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배가 붓는다 בִּטְנֵ֖ךְ צָבָֽה‘라는 문장도 확인해보니, 역시 히브리어로 배(베텐)에는 자궁이란 의미도 있다. 즉 자궁과 야레크에 저주를 받아 불임이 되라는 소리인 것 같다.

그나저나 야레크와 할례란 단어가 없으면 경전이 진행이 안 되는 수준인데, 그냥 야레크교라고 하면 더 직관적이고 좋을 것 같다.

여튼 남편이 공연히 증거 없이 의처증이 생겼을 때, 아내를 제사장한테 끌고가서 이 지저분한 저주템을 먹일 수 있다는 것이 오늘 내용의 핵심이다. 실제로 불륜을 저지른 증거가 있을 경우엔 그냥 바로 돌로 때려 죽일 수 있기 때문에 그건 예외인 듯.

생각해보면 성막 바닥의 흙이란 게 이 도축자들이 매일 피 뿌리고 흘리고 내장 기름 떨어뜨리고 재 떨어지고 한 곳일 텐데, 그래서 온갖 세균이 득시글 거렸을 것 같은데, 이쯤되면 그냥 멀쩡한 사람한테 병을 옮겨준 거나 다름없는 거 아님?

당시의 여자들 느낌을 간접체험하기 위해 비슷한 이미지를 가져와 보았다.

간지나는 야훼한테 판결 맡겼는데 아론의 두 아들처럼 단박에 직화하지 않고 음침하게 배나 붓게 만들다니… 정말 성격 어두컴컴하다.

그 와중에 왠지 남편들이 아내 죽이고 새 여자 얻으려고 성막 바닥의 흙에 독 같은 거 미리 뿌려두거나, 제사장에게 돈 주고 독 타게 하거나 했다가 명탐정 모세에게 잡히는 추리 소설 같은 게 나오면 재밌겠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 이번 내용이 아무래도 너무도 뜬금없고 괴이쩍어서 이것저것 찾아봤다. 일단, 민수기의 아내 부정 판별법은 탈무드에서도 별도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탈무드는 구전되던 율법이자 모세5경의 해설서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민수기 5장의 내용은 탈무드에서는 ‘소타Sotah‘라는 소책자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 내용을 ‘쓴 물의 시련‘ 혹은 ‘소타 의식‘ 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이어 논문도 찾아본다. 논문도 거의 없다. 찾아 본 논문에서는 이 소타 의식을 뭐라고 해석하는지 알아보았다.

요약하면, 이스라엘은 남녀차별이 심한 사회라, 남편이 의심만으로도 아내를 심하게 학대할 수 있었는데, 이 ‘쓴 물의 시련’을 받게 하여 여자를 공적으로 보호했다는 것이다.

물론 비판도 있다(D.T. Olson). 여자는 해명의 기회는 커녕 그저 ‘예, 예(아멘 아멘)’ 밖에 할 수 없고, 판결이 나기도 전에 남들 다 보는 앞에서 머리채를 풀고 이미 죄인 최급을 받는데, 그게 무슨 여자를 보호하는 행동이냐는 것이다*.

내 눈에도 그저 고대 레벨로, 신을 온갖 미신적 도구 정도로 활용하는 행위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무슨 무당 찾아가서 마법이나 주술이나 저주 같은 걸 의뢰하는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논문에서는 부득불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의식이라고 강조하고는 있지만 말이다. 설령 그런 효과가 있었다고 해도, 애초에 이 소타 의식이 만들어진 의도 자체는 그리 약자 친화적이어서가 아니었음에 500원 걸 수 있음.

왜냐면 함무라비 법에도 비슷한 게 있기 때문이다.

§132 한 남자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동침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남자와 관련된 혐의로 그녀를 손가락질해야 한다면, 그녀는 남편을 위해 신성한 강 시련에 복종해야 한다.**

이 법에 따라 아내는 강에 몸을 던져야 한다. 강의 신 이드Id가 판결하여 여자가 무고하다면 살려줄 것이고, 익사하면 유죄이다. (중세의 마녀판별 하던 때의 논리 구조를 이때부터 엿볼 수 있는 듯 하다.)

인간들도 웃기는 게, 시험에 들게 하지 말아달라고 기도하는 주제에 자기들은 신을 억수로 시험해 댐. 내가 신이라도 짜증나서 페스트 돌리고 인류 손절이다.

아무튼 요약하면, 소타 의식이라는 것도 머릿속이 다 고만고만한 고대인들이 뭐 의문나서 물어보고 싶을 때마다 신을 찾아가는 식의 행위로 봐야지,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게 아닌 것 같다는 것임. 나중에 고대 그리스인들도 신전에 별 하찮은 것까지 다 물어보러 간 것만 봐도, 인류란 하는 짓이 다 거기서 거기였던 것임.

*정중호, 민수기 5장에 나타난 소타의 의미와 가정회복, 동서인문학 39 (2006). 355-376, p.372, 재인용

* *Martha T. Roth,  Law Collections from Mesopotamia and Asia Minor , SBL Writings from Ancient World 6(Atlanta: Scholars Press, 1995), 106.

댓글 13개

  1. 중세에 처녀 감별법 중 역청 녹인 물을 먹이는 방법이 생각나네요. 처녀가 아니라면 당장 얼굴이 붉어진댔는데, 이 방법을 쓰니까 매춘부들도 처녀라는 감정이 떠서 대략 망했다는 기록도 남아있음.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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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아ㅠㅠㅠ 일에 시달리다 이제야 왔습니다 그 사이에 벌써 민수기까지 읽고 계셨군요. 쌓인 포스팅들이 마치 요셉이 사채업으로 불려놓은 두둑한 창고같습니다. 요셉쨩 이런 기분이었구나….?
    흙 탄 물 감별법이나 제사 규례를 보자니 지난 포스트의 명구가 떠오릅니다. 야훼는 그 스케일급이 유목민족 급이지 세계급은 못 된다는 명구가요….
    포스팅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고 건필하셔서 사사기를 넘어 사무엘기까지 꼭 가주세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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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런데 어째 저 흙 탄 물 먹고 ‘배가 부른다’는 문구가, 포스팅대로 자궁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에 더하여 병균 가득한 물 먹고 생길 배앓이 병 같기도 하단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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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거 제가 예전에 교회 한참 열심히 다닐 때부터 알고 있던 거긴 한데, 그 땐 하나님은 진심으로 믿고 하나님의 기적이런 것도 의심 없이 받아들이던 때라, 그냥 그런 게 있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죠. ㅋㅋㅋㅋ 지금 보니까 참 기괴한 물건이었네요… 그걸 믿은 과거의 저 자신도 참 기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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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아니…..ㅋㅋㅋㅋㅋㅋ 대장균 함유된 흙탕물에 대항할 수 있는 튼튼한 면역체계를 가진 여성만이 의처증으로부터 살아남는 시스템인가요?

    우리 구약이 친구… 난 꺼츠그립 맹세와, 불이 잘 붙던 모세의 두 조카들 에피 때 네 밑바닥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이건?? 뭐니??

    그….모세오경을 비롯한 구약서가 사람이라면 좀 심한 금쪽이 같습니다. 이 친구가 번식과 자손에는 굉장히 집착하는데 섹스와 정액은 터부시하고 특히 출산의 주체인 여성을 박해하는 걸 보세요. 이 미칠듯한 이중성 어쩌면 좋니. 성을 터부시하고 쉬쉬하는 수준이 마치 프로이트가 활동할 무렵의 영국 같습니다. 근데 생각해보니 그 동네도 원인을 거슬러올라가보면 역시 야훼가 시초네요. 이 금쪽이 새끼들…

    솔직히 구약은 경전이 아니라 삼국지처럼 재밌게 각색되고 인물들 간의 세력싸움 위주로 집필되었어야 합니다. 중동에 나관중씨가 없었던 게 문제에요. 저런 고대여혐과 영토분쟁과 미신적인 법률만 한가득인 텍스트에 옛날이야기랑 동네 신화 한둘 있다고 뭔가 도덕적인 가치를 찾는 방향으로 해석하려 하고 후대도 그 흐름을 물려받아서 정치적인 사건들을 (예: 이집트탈출) 신화적으로 각색한 게 잘못입니다. ㅋㅋㅋ ㅠ

    그 결과로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온갖 해악을 끼치다가 (중세 수도사들 머리 다 빠진거 보십쇼… 어쩌면 저런 앞뒤 안맞는 텍스트 어떻게든 끼워맞춘다고 고생하다 그렇게 된 걸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렇게 동북아시아의 한 사람으로 하여금 또다시 긴 댓글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아니….! 아니…!!

    불신자님 난 가만히 있었는데 구약 쟤가 먼저 와서 이상한 소리 하고 갔다고요…!

    막 의처증있는 남편 둔 여자한테 흙탕물 먹인대요 쟤가…! 난 진짜 오늘은 댓글 짧게 쓰고가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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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 그냥… 왜 무통주사 맞으면 안 된다는 거야? 거기에 뭔 소리가 있길래? 하고 펴들었다가 실수로 미끄러지는 바람에 사이트 만들어 버렸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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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돌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고 있고, 올해 발견한 가장 재미있는 읽을 거리입니다…..

    그나저나 야훼께서 명예살인도 관장해주시고… 그러면 생명은 왜 지키냐며.. 남자만 사람이라 남자 생명만 생명이냐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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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야자로시작하는말은야레크와야훼 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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