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3. 나실인의 머리카락 같은 건 받고 싶지 않아…

종교와 거리가 멀던 내가 성경을 읽으면서 처음 본 고유 명사들이 많은데, 민수기 6장에 처음 나오는 ‘나실‘이라는 단어도 그 중 하나이다. ‘남자든 여자든 나실인이 되어 헌신하기로 하고 특별한 서약을 했을 때‘ 지켜야 할 규율에 대한 내용이다.

영어판을 확인하니 Nazirite라고 쓰여있다. 역시 처음 보는 단어라 히브리어로도 확인해 본다.

נָזִ֔יר 나지르

‘구별하다’라는 뜻으로, 어근 역시 ‘구별하다, ‘헌신하다’ ‘봉헌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 ‘나자르‘이다. 그냥 별 거 없고, ‘구별된 사람’이란 뜻일 뿐인데 고유 명사처럼 쓰게 된 것 같다.

기독교를 잘 알고 오래 접한 분들이라면 당연히 아시겠지만, ‘신에게 헌신하기로 하는 특별한 서약’을 서원이라고 한다. 반면 나는 서원이라고 하면 도산서원 백운동서원 이런 것만 먼저 떠오르는 멍청한 조선 사람이다.

도산서원

일반적인 서원의 뜻은 ‘원하는 것을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맹세’하는 것인데, 일상에서 쓰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반면 교인들은 이 단어가 익숙한 듯 하다. 민수기 6장만 봤을 때는 뭔가 난데없이 신심이 뻗쳤을 때 그 기세를 몰아 자발적으로 ‘나 금욕기!’하며 맹세하는 느낌이다. 대체 이놈의 서원이란 걸, 현대 기독교인들은 언제 어떻게 무슨 심정으로 어떤 절차로 누구에게 밝히고 어떻게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이렇게 곁다리만 빙빙 에두르고 있다.

그냥 갑자기 퇴근길에 ‘아 신심 뻗친다!’ 하고선 그대로 목사님께 카톡 보내서 ‘오늘부터 두 달간 서원하겠습니다, 알아두세요!’ 하는 거냔 말이다. 아니면 목사님이 교회에서 ‘오늘부터 서원하실 분?’ 하며 이름 받아 적는 건가? 아니면 혼자 ‘오늘부터 서원 1일차!’하며 교회 단톡방에 올리는 건가? 아니면 요즘엔 안 하나? 교회 문화를 알 수가 없으니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도무지 잡히지가 않는다.

아무튼 민수기에 나온 대로만 읽어보겠다. 나실 사람들은 자신이 약속한 서원 기간 동안 야훼한테 스스로를 바치는 금욕 생활을 해야 한다.

나실인으로 서원하는 기간 동안,

  1. 술 절대 안 됨.
  2. 포도나무에서 난 건 술을 비롯해서 뭐든 안 됨.
  3. 면도칼로 이발 금지. (삼손이 이거 하는 중이었나 봄?)
  4. 죽은 사람 근처에 가지 말 것. 장례식도 안 됨. 가족이 죽어도 안 됨.
찾아보니 삼손이 영구 나실인 맞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원을 통해 나실인이 된다는 이 의식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은 머리털 같다. 즉 약속한 기간 동안 금욕하며 기른 머리털을 바치는 게 핵심인 것이다. 서원 기간 동안 술 안 먹고 장례식 안 가며 부정 안 탄 머리털을 길러내야 한다. 뭔가 마약쟁이들이 머리카락 검사에 안 걸리려고 하는 느낌 같기도 함.

그렇게 부정 안 타는 것이 중요한데, 그럼에도 근처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4번을 못 지키는 경우가 있지 않겠음? 그렇게 중도에 부정타서 맹세를 어기게 된다면, 싹 리셋하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리셋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7일에 한 번씩 몸을 정결하게 하도록 정해져 있나 본데, 중도에 부정타면 7일을 기다렸다가 몸을 정결하게 하는 날 머리털과 수염을 싹 밀어버려야 한다.

여드렛날에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두 마리를 회막으로 가져 옴.

참고로 비둘기 두 마리를 제물로 쓰는 제사는 ‘속죄제’에 해당한다. 속죄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레위기]1편을 다시 보시라.

레위기 때 정리한 내용대로라면, 일반적으로 죄인이 누구냐에 따라 속죄제에 바치는 제물은 다음과 같이 차등이 있었다.

  1. 제사장 : 숫소
  2. 이스라엘 온 회중의 공통책임 : 숫소
  3. 최고 통치자 : 숫염소
  4. 일반 평민 : 암양, 암염소
  5. 가난함 : 산비둘기 두 마리 or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 (이때 머리를 꺾되 떨어지지는 않게)
  6. 너무 가난함 : 밀가루 1/10 에바 (속죄물이므로 기름x 향x)

즉, 서원 중에 부정탄다는 건, 형사 및 질병관리법에 속하는 sin으로 분류되어 속죄제를 해야 하는 것 같다. 이렇게 가져온 비둘기 두 마리 중 하나는 속죄제물로, 다른 하나는 번제물로 삼는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서원하기로 맹세한 기간 동안 금욕하며 머리를 다시 기르는데, 재시작할 때 왠지 한 살 짜리 숫양을 바쳐 속건제도 추가로 해야 한다. 속건은 guilt로, 보통은 손해배상죄인데 이게 왜 필요한 것일까? 생각해보니, 레위기에서 제물을 상하게 한 죄도 속건제에 해당했었다.

즉 성물을 상하게 한 경우, 성물의 가격에 20%를 더한 배상가에 상응하는 숫양을 제사장에게 준다는 규율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나실인이라는 것은 주에게 바쳐진 ‘성물’이므로 스스로 성물을 잘못 다뤄 상하게 한 죄를 배상해야 하는 듯 하다.

요약하면 부정탄 나실인은 더러움을 씻는 속죄제를 하고, 새로 태어난 나실인은 이전 나실인을 잘못 다뤄 상하게 한 죄로 손해배상인 속건제를 하는 것이다.

서원 기간이 끝났을 때도 많은 제물을 준비해야 한다.

  1. 번제용
    – 흠 없는 1살 짜리 숫양
  2. 속죄제
    – 흠 없는 1살 짜리 암양
  3. 화목제용
    – 흠 없는 숫양 (나이 상관 없음)
  4. 곡식 제물
    – 누룩없이 기름 반죽한 빵
    – 누룩없이 기름바른 얇은 과자
  5. 전제
    -붓는 전제물 (술)

순서는 번제, 속죄제, 화목제인 듯 하고, 그때마다 곡식 제물과 전제를 곁들이는 듯 하다.

직접 읽어보면 알겠지만, 숫양, 암양, 숫양, 빵, 과자, 곡식제물, 전제물을 읊어대면서 어떤 걸 번제로, 어떤 걸 속죄제로, 어떤 걸 화목제로 하겠다는 건지 혼란스럽게 써놨다. 아무튼 최대한 정리하면 위와 같음.

화목제 때까지 오면 드디어 대망의 머리털을 바칠 차례다. 나실인은 그간 기른 머리털을 밀고 화목제물(숫양)이 타고 있는 불 위에 얹어 같이 태운다.

슥삭슥삭

제사장은 삶은 숫양의 어깨 고기와 빵과 과자를 하나씩 나실 사람의 두 손에 올려 두었다가, 나중에 요제로 흔들어 바친다. 이거 말고도 가슴과 넓적다리도 요제로 바치는데, 요제로 바친 건 모두 다 제사장 거임.

이런 절차가 다 끝나면, 나실 사람은 포도주를 마셔도 된다. 그 외에도 자기 형편에 따라 뭘 더 바치기로 맹세했다면 지켜야 한다.

나실인 의식이란 것도 상당히 뜬금없다고 느껴져 찾아보니 머리카락과 포도주에 대한 어지러운 해석들이 잔뜩 붙어있음. 자기네들도 난데없이 야레크에 이어, 머리카락이라는 구체적인 신체 일부에 집착하는 게 이상했나 봄.

찾아 본 해석들을 대충 요약하면 이렇다.

  1. 포도주를 금한다는 것은 모든 유혹에서 탈피하라는 뜻이다.
  2.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인데, 이걸 못 마시는 나실인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기에, 근심의 상징인 머리카락을 스스로 밀 수 없는 것이다.
  3. 나실인들은 생명과 영광의 상징으로 머리를 길렀고, 이것을 태움으로써 나중에 올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예언이 된다.
  4. 머리카락은 생명의 힘, 즉 야훼의 승리의 화환을 상징하는 것인데, 이것을 자르지 않음으로써 성물로서의 자신을 훼손하지 않고, 야훼에게 복종하는 것이며, 나중에는 이것을 바치려는 것이다.
  5. 그걸 떠나 남자든 여자든 둘 다 서원할 수 있으므로 성평등(ㅋㅋㅋㅋㅋㅋㅋ)이다.

…나는 이렇게까지 해석이 구차한 걸 본 적이 없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줘야 할 지 모르겠음.

삼손과 머리카락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메소포타미아 신화인 ‘길가메쉬 서사시’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우루크의 왕 길가메쉬는 야만인 엔키두를 길들이기 위해서 여신관 샴하트를 그에게 보낸다. 엔키두는 짐승처럼 온 몸에 털이 났고, 머리는 여자처럼 길었다고 한다. 그런 엔키두였지만 샴하트와의 섹스를 통해 빵과 맥주 먹는 법을 배우며 문명인으로 거듭난다. 즉 여사제가 섹스를 통해 남자를 짐승에서 문명인으로 길들인다는 상징인데 뭔가 이쪽이 훨씬 흥미진진하고 재밌다. 아무튼 15일 간의 섹스 후, 완전히 문명인이 된 엔키두는 머리카락을 뺀 온 몸의 털이 빠져버리고(털을 밀어버리고) 짐승같던 힘 대신 지성을 얻게 된다.

아무튼 고대인들은 머리카락을 생명과 활기의 상징으로 봤고, 그래서 머리를 풍성하게 기르는 건 권력과 힘을 나타냈다. 그런 와중에 머리카락을 부정타지 않게 간직했다가 바치겠다는 단순한 발상으로 생각해야지 이걸 무슨 예수의 피와 엮기 시작하면 답이 없음.

이렇게 나실인에 대한 내용은 끝인데, 6장 마지막에 갑자기 야훼가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을 축복하겠다는 내용이 뜬금없이 끼어 있음. 별 내용 없으므로 무시한다.

여러 번 말했지만 구약은 기본적으로 생각나는 순서대로 말하고, 아무 데서나 다시 떠오르면 반복하고, 체계없고, 지 머리속에 있는 걸 남들도 다 아는 줄 알고 뛰어넘는 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특히 절차나 시스템을 설명할 때가 특히 취약하다.

이 다음 장인 7장은 지파마다 바친 세금 기록이고, 8장엔 레위인들 씻겨다 장자 대신 바치는 의식을 치르는 내용으로, [민수기] 1편에 이미 정리했던 내용이라 뛰어넘는다. 또한 8장엔 추가로 등잔을 차려놓는 방법에 대해서도 또 맥락없이 짧게 언급되어 있는데, 레위기 때 같은 내용이 있으므로 이것도 무시하겠다.

별 내용도 없는데 괜히 논문 찾아본다고 시간만 버린 느낌이다…

댓글 10개

  1. 아니 회개한답시고 속죄랍시고, 그, 뭐시냐 그 비누는 무슨 물로 감는 것도 자주 못했을 기름 떡진 머리를 번제로…? 아니 애초에 번제에 올릴거라 잘 타라고 기름 떡진 머리를 바친 걸지도 모르겠군요 이거… 우리 야훼는 자른 꼬추도 좋아하시고 기름진 머리도 받으시고… 불결한 인간 신체에 일종의 광적인 선호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이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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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보통 난임인 분들이 간절한 마음에서 서원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아이를 낳게 되면 이 아이를 주의 종으로(보통 목사죠 ㅋㅋ) 키우겠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그러셨는데 저는 ??? 싫은데 엄마? 하고 불속성 효자 중이죠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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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자, 지금까지 팔문금쇄진, 사회불평등, 흙탕물드링킹으로 귀결되는 의처증, 떡진 머리카락 제사까지 나왔는데 이쯤되니 다음엔 대체 대관절 뭐가 나올지 궁금해져서 민수기 다음장을 미리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이것이야말로 고도의 영업이라던 어느 분의 댓글이 맞았어요.

    + 결국 뒷내용 약간 읽고왔습니다 ㅋㅋㅋㅋㅋㅋ 규례와 풍습이 끝나면 슬슬 다시 우리의 모이코패스 싸세가 등장하는군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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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ㅋㅋㅋㅋㅋ 신실한 기독교인(술 안마심)과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데, 나실인들은 술 안마셔.. 하기에 이게 대체 뭔 소리인가 했는데 서원(?) 중이셨나봅니다. 그렇지만 떡진 머리카락은 다메.. 다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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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서원’은 불교신자들이라면 굉장히 익숙한 표현일 것 같아요. ‘소원’이 무언가를 받기를 원하고 바라는 마음이라면 ‘서원’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스스로 서약하겠다는 마음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전 기독교에서 ‘서원’이라는 말이 나와서 되게 반가웠네요. 위 댓글을 보니 자식을 낳으면 주의 종으로 키우겠다는 것도 서원의 하나라니 신선했어요. 군종병 교육과정에서 천주교 군종병 친구들이 ‘기독교는 정말 빡센것같아’ 라고 하길래 속으로 ‘???? 빡세고 규율 엄하기로는 천주교가 더 하지 않나????’ 했는데 자녀를 목사로 키우겠다는 맹세?를 한다며 그것에 놀라더라고요. 같이 교육받던 기독교 군종병이 딱 그 케이스라며…

    구약은 놀라운것들이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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