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신을 복수형으로 칭하는 문제

창세기, 에덴동산에 있던 인간이 선악 좀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유로, “인간이 ‘우리’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며, 영원히 사는 것만이라도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 복수형이 우습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대한 일명 “정설”은 삼위일체 하나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경은 역사서나 과학서가 아니며 “계시”로 쓰여진 진리라 인간의 논리로 이해 못할 뿐, 성경이 틀릴 리가 없다‘가 중세부터 종교인들의 기본적인 태도다.

그래서 텍스트에 미친 듯이 구멍이 많은 데도, 그것을 어떻게 다 말 되게 끼워 맞춘 어떤 가설이 나오면 ‘이거다!’ 하며 다 해결된 것처럼 여기는 것 같다.

그런데 텍스트 내부에서 충분히 암시되고 유도된 것들끼리 매듭만 지어서 연결하는 것, 또는 당시 역사적 지리적 사실 및 인류학적 관점 등 과학적 입장에서 비춰보는 것이 보통 해석의 레벨이라면, 새창작 개념으로 바다를 메워서 육지를 만드는 레벨의 가설들은 전문 용어(?)로 ‘2차 창작’ 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삼위일체설이나 기타 로마 공의회에서 인가한 모든 “정설”들이, 또 교회 목사님이 말해주는 그 ‘아하!’ 싶은 2차 창작들이, 나를 비롯한 보통의 불신자들에겐 그저 애초부터 문제 많은 텍스트를 어떻게든 말 되게 끼워 맞추려는 인간들의 분투로만 보인다는 것이다.

이 감각을 이해 못하고서는 계속 ‘우리 해석’을 모른다며 불쾌해하는데… 사실 난 기독교인들이 불쾌하지 않게 쓸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심지어 그 삼위일체설이란 것도 중세 내내 미묘한 차이로 계속 변하고 분파로 갈라지는 등, 한 번에 정리되고 끝났던 문제도 아니다.

두번째, ‘장엄복수형’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장엄복수형이란, 양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질에 대한 복수 개념이다. 단수로 표현할 수 없는, 더 위대하고 거대한 신을 표현할 때 때로 복수를 쓴다고 한다. 탁월해서 복수인 것.

라틴어 계열에서 온 문법이라고 하며, 중세 영어에서도 황제가 스스로를 지칭할 때 ‘we’라고 하면 ‘우리’가 아닌 ‘짐’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예가 있다.

히브리어에서도 장엄복수형이라는 게 있다. 히브리어에서는 신을 ‘엘로힘’이라고 한다. 이것은 신을 뜻하는 엘과, 남성복수형 어미가 결합한 형태다. 형태는 ‘신들’이지만 ‘신’이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 신을 복수형으로 칭하고 있지만 단수이기 때문에 유일신 논리가 안 깨진다는 거임. (하지만 테라핌이 등장하면 어떨까? 창세기편 24화 참고)

게다가 히브리어 성경에서도 ‘우리 중에 하나‘에서의 ‘우리‘는 מִמֶּ֔נּוּ (밈멘누)인데, 이는 장엄복수형 문법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님. 그냥 찐 복수형으로 쓴 거임.

아무튼 그래도 라틴어적 관습이 토핑되느라 영어 성경에서는 장엄복수형으로 we를 써서 번역해놨다고 치자.

근데 한글 번역은 왜 여전히 ‘우리‘임? 한국어에는 장엄복수형이 없는데? 번역도 계시받아 번역한 거라 무오류라고 주장하던 거 아니었음?

요약하면 영어 성경에서 일부러 라틴어스럽게 장엄복수형으로 썼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 같으나, 일단 히브리어 성경에서부터 찐 복수형을 쓰고 있으니 그 주장엔 딱히 신빙성이 없음.

아무튼 혹시나 해서 히브리어로 밈멘누를 검색해본다. 그저 밈멘누란 단어를 검색했을 뿐인데 연관 검색으로 창세기 3장 22절을 해석하는 글들이 한글 및 영문 등으로 여러 개 나옴 ㅋㅋㅋㅋ 유구하게 자기네들도 혼란스럽다 이거임

성경의 다른 구절과는 달리, 이건 야훼가 직접 말한 거라, ‘신이 스스로 복수임을 인정한 거냐, 아닌 거냐?’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인가 봄.

그리스도교인이라면 다들 아는 중세 수도사 중에 유명론자 오캄의 윌리엄이란 분이 있다. 그 분이 ‘말 안 되는 가설까지 다 늘어놓고 검토하지 말고, 더 적은 수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할 경우 그게 답이니 논리를 늘리지 말라‘고 했다.

힝 면도칼에 베었졍

오캄의 면도날 식으로 말하자면, 구약에서의 밈멘누라고 칭하는 문제, 노아한테 지시하는 신의 말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문제들은 그냥 초기에 다신교인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가나안 등의 지역 신화를 받아들였다가 그것이 점점 유일신으로 개정되어 가면서 남은 흔적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삼위일체 같은 설이나 이차창작해내지 말고, 장엄복수형 같은 걸 파지 말고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성경 무오류설’에, ‘처음부터 완성된 유일신 야훼’라는 답을 이미 정해놓고 믿는 중일 테니, 어떻게든 설명을 만들어놓고 ‘우리 해석’이라고 부르며 안도할 사람은 안도하면 됨.

나는 물론 오랫동안 불신에 진심인 사람이기 때문에, 일명 정설들, 교파마다 다르다는 해석들을 거의 모른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몰라도 되고 알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텍스트 외부에서 합의된 해석이나 정설의 개입 없이, 최대한 텍스트 내부의 내용만 가지고 1차적으로 이해하는 방향으로 쓸 예정이다. 거기에 가능하면 당시 고증된 시대상 정도를 반영하여 해석하는 정도.

이건 아마 교회의 일명 ‘우리 해석’이란 걸 아무 것도 모르는 참된 개새ㄲ…아니 불신자니까 가능한 일일 것이다.

불신의 효능

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보아라, 이 사람이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서, 생명나무의 열매까지 따서 먹고, 끝없이 살게 하여서는 안 된다.” (창3:22, 새번역)

Then the LORD God said, “Look, the human beings have become like us, knowing both good and evil. What if they reach out, take fruit from the tree of life, and eat it? Then they will live forever!” (Genesis 3:22, NLT)

우리 중 하나처럼 כְּאַחַ֣ד מִמֶּ֔נּוּ”

8 Comments

  1. 안녕하세요 쓰시는 글들 모두 잘 보고 있습니다. 저도 예전부터 ‘왕좌의 게임처럼’ 성경을 읽고 싶었는데 워낙 종류가 많아 어떤 걸 읽어야 할지 헷갈리더군요….ㅠ.ㅠ 혹시 어느 출판사, 또는 어떤 판본을 읽고 계신지 정보 공유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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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거 엮어서 책으로 나오면 좋겠어요ㅋㅋㅋ누군가는 신성모독이라고 불태울진 모르겠지만 최근 본 것 중에 가장 흥미돋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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